한반도에 야구가 처음 들어온 날 [우리야구 문화사]
1896년 4월 25일 토요일,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경기로 남아있는 역사적인 야구 경기가
서대문 밖 모화관 근처 공터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경기는 한성(서울)에 거주하던 미국인들과 미해병대원들로 나뉘어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이 무렵 미국 본토에서는 내셔널리그가 탄생하면서 야구가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얻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독립신문 영문판 The Independent는 이 경기를 보도하였습니다
결과는 해병대의 1점차 승리
그렇게 이 경기가 현 시점에서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기록된 경기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주 일요일, 5월 2일에는 다시금 경기가 열렸습니다.
(그 시절의 사회인야구)
이번 경기는 장소를 옮겨 훈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훈련원은 1907년 일제에 의해 해산됨, 이후 경기장으로 활용되었다는 자료 다수)
한성에 거주하던 미국인들과 미해병대가 다시금 붙은 이 경기는
해병대의 6점차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또 다시 일주일 뒤,
이번에는 한성에 거주하는 미국인 대 영국인으로 나뉘어 경기가 이루어졌습니다
해당 경기는 미국인들의 4점차 승리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무더운 여름으로 접어들기 전 6월 23일,
독립신문 영문판 The Independent는 한반도 내 첫 야구 경기 예고를 보도하였습니다
내용은 이틀 뒤 6월 25일, 한성에 거주하는 미국인 VS 미해병대 리턴 매치였습니다
그렇게 경기 당일, Seoul Athletic Club와 U.S.S. Yorktown의 경기가 훈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매치의 포인트는 바로 우리나라 태생인 서재필 박사(영문명:Philip Jaisohn)가
Seoul Athletic Club 소속으로 경기를 나갔다는 점입니다
경기에 나간 서재필 박사는 6번타자 중견수로 나가 그날 3득점을 기록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경기는 각 팀의 라인업과 다른 선수들의 활약상까지 기록되어 있는 경기였습니다
[Seoul Athletic Club 라인업]
[타순] | [포지션] | [선수명] | [득점] |
1번타자 | 투수 | Reynolds | 3 |
2번타자 | 2루수 | Harrison | 2 |
3번타자 | 포수 | Hulbert | 1 |
4번타자 | 유격수 | Allen | 1 |
5번타자 | 1루수 | Belkapp | 3 |
6번타자 | 중견수 | Jaisohn(박재필 박사) | 3 |
7번타자 | 우익수 | Bell | 1 |
8번타자 | 3루수 | Miller | 2 |
9번타자 | 좌익수 | Gifford | 1 |
[U.S.S. Yorktown 라인업]
[타순] | [포지션] | [선수명] | [득점] |
1번타자 | 좌익수 | Lindsay | 1 |
2번타자 | 포수 | Anthon | 2 |
3번타자 | 1루수 | Keene | 3 |
4번타자 | 2루수 | Adams | 3 |
5번타자 | 우익수 | Peterson | 4 |
6번타자 | 3루수 | Feeney | 3 |
7번타자 | 중견수 | Sharp | 2 |
8번타자 | 유격수 | Garwood | 2 |
9번타자 | 투수 | Stevens | 3 |
스코어 16:23으로 U.S.S. Yorktown 승리
이 기록을 마지막으로 1896년에는 다른 경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한반도의 푹 찌는 여름에도 경기를 하기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1897~1898 동안에도 야구 경기가 열렸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공식적으로
기록된 경기의 자료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1800년대에 한반도에서 야구가
더 기록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1899년 2월 3일,
그 당시에 인천에 있었던 일본영어야학회(日本英語夜學會)의
학생, 후지야마 후지사와(藤山 藤芳)의 그날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3시 근무가 끝난 다음 4시경 부터 나카야마 (中山) 군을 불러내어 일연종(一蓮宗:인천 옛 신흥초 교 옆의 절) 앞 광장에서 아카마쓰(赤松) 선생, 후지무 라(藤村), 사토(佐藤) 씨, 히라이(平井) 선생, 나카야마 군 그리고 우리들과 함께 ‘베이스 볼’이라는 서양식 공치기를 하고 5시경에 돌아와 목욕탕에 갔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야구는 1901년 필립 질레트의 내한 이전인
19세기 말부터 한반도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